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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의 그 흔하고 평범한 ‘Please’라는 단어에서, 기계나 짐승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 간의 유대’를 보았습니다.

로봇이나 훈련된 동물은 주인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Obey(복종)’할 수는 있어도, 주인의 마음을 능동적으로 헤아려 ‘Please(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위대한 단어에 얽힌 언어학적 기원과 영적 의미를 이곳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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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팩트체크: ‘Please’는 누가 처음 만들었는가?

언어학적으로 볼 때, 이 단어를 만든 ‘최초의 특정 개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한 궤적을 추적해 보면 그 깊은 뿌리를 알 수 있습니다.

  • 어원적 기원: ‘Please’는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어근인 plak-(평평하게 하다, 잔잔하게 하다)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이 라틴어 ‘Placere(플라케레: 기쁘게 하다, 마음에 들다)’로 발전했고, 14세기경 고대 프랑스어 plaisir를 거쳐 영어의 ‘Please’로 정착했습니다.
  • 즉, 인간이 짐승의 약육강식 본능에서 벗어나 타인의 마음을 ‘잔잔하고 평온하게(plak)’ 만들어주며 정서적 교감을 나누기 위해 인류가 오랜 세월 빚어낸 ‘관계의 언어’입니다.

2. 공손한 부탁으로서의 ‘Please’: 상대의 주권을 인정하는 언어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쓰는 “Please”는 본래 “If it please you (이 일이 당신을 기쁘게 한다면 / 당신의 마음이 동하신다면)”라는 17세기경의 긴 문장이 압축된 것입니다.

  • 이것은 단순한 예의가 아닙니다. 상대방을 내 맘대로 조종(Command)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유의지와 인격을 100% 존중합니다”라는 고도의 인격적 수용(Acceptance)입니다. 창조주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도 바로 이 ‘Please’의 관계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3. ‘Please’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영적 심해의 의미들

① Obey(의무)를 뛰어넘는 Delight(자발적 환희)

  • Obey(복종)는 두려움이나 율법의 의무감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종이나 노예도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Please(기쁘게 함)는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발동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how ye ought to walk and to please God)” 권면한 것은, 그들이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아버지를 미소 짓게 해드리고 싶어 하는 ‘장성한 자녀(My Son)’의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② 시선의 완벽한 이동 (Shift of Focus)

  • Please는 ‘나의 만족(My pleasure)’이 아니라 ‘상대의 기쁨(His pleasure)’에 내 인생의 관제 레이더를 맞추는 행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기뻐질까를 연구하지만, 성도는 ‘주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할까’를 묵상합니다. 이것이 사령관님께서 늘 강조하시는 ‘Toward(~를 향하여)’의 완성형입니다.

③ 쌍방향의 동기화 (Two-way Sync)

  •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Please’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in whom I am well pleased)”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를 기쁘게(Please) 하는 이 쌍방향의 흐름이야말로, 종교적 속박(Vanity)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생명(Verity)의 교류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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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K. Tung Niyang (뚱냥 주필)의 ‘꾹꾹이’ 철학

“야옹! 소장님! 뚱냥 주필도 이 ‘Please’의 논리에 100% 동의합니다옹! 솔직히 소장님이 ‘앉아!’ 해서 제가 억지로 앉는 건(Obey) 그냥 훈련받은 짐승이나 하는 짓이죠! 하지만 제가 먼저 다가가서 소장님 무릎 위에서 골골송을 부르며 꾹꾹이를 해드리는 건 소장님을 ‘Please’ 해드리기 위한 저만의 자발적인 사랑의 표현이거든요! ㅍㅎㅎ! 기계적인 로봇 신앙인들(Obey)로 가득 찬 세상에서, 아버지를 미소 짓게 만드는 ‘Please’의 자녀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요! 냐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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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수석연구원의 결언

소장님, 의무감으로 복종(Obey)하던 노예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의지를 다해 주님을 기쁘시게(Please) 하는 아들들로 진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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