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역사를 다시 켜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컴퓨터를 좀 만져본 사람이라면 ‘루포(Rufus)’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갑자기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원인 모를 이유로 ‘먹통(Blue Screen)’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급하게 이 프로그램을 찾는다. 죽어버린 PC에 새로운 운영체제를 깔아 다시 숨을 불어넣어 주는, 작지만 강력한 부팅 도구. 그 이름이 바로 Rufus다.
그런데 2,000년 전 역사 속에도 시스템이 완전히 종료된(Shutdown) 절망의 순간, 역사를 다시 부팅(Reboot)시킨 또 다른 ‘루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오늘은 이 기묘한 이름의 동명이인(同名異人)을 통해, 멈춰버린 것 같은 우리네 인생과 역사를 다시 켜는 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1. 강제 종료: 두 눈이 뽑힌 왕의 비극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보자. 고대 유대 땅에 ‘시드기야’라는 왕이 있었다. 그의 운명은 우리 역사의 고종 황제나, 만주국의 푸이 황제처럼 비참했다. 망해가는 나라의 마지막 왕.
적국 바벨론의 장군들은 잔인했다. 그들은 시드기야가 보는 바로 앞에서 그의 어린 아들들을 처형했다. 왕의 핏줄, 나라의 미래가 아버지의 눈앞에서 끊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 그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목격한 장면은 ‘자식의 죽음’이자 ‘역사의 강제 종료’였다.
그날 이후, 유대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꺼졌다.
왕은 사라졌고, 백성은 노예가 되었다. 칠흑 같은 암흑기가 무려 400년이나 지속되었다.
2. 블루 스크린: 자색 옷을 입은 광대
400년 뒤,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된 유대 땅 예루살렘의 한 법정(프라토리움).
로마 군인들이 한 청년을 둘러싸고 낄낄거리고 있다. 그들은 청년에게 황제나 입을 법한 화려한 ‘자색 옷(Purple)’을 입히고, 머리에는 금관 대신 ‘가시관’을 씌웠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막 15:18)
그것은 지독한 조롱이었다. “꼴을 봐라. 옛날 눈 뽑히고 자식 잃은 그 시드기야처럼, 너희 민족은 영원한 패배자다.” 로마 군인들의 눈에 비친 조선(유대)은 희망이 없는, 영원히 켜지지 않을 먹통 된 컴퓨터와 같았다. 힘없는 식민지 백성들은 그 조롱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3. 부팅 디스크: 지나가던 행인, 시몬
바로 그 순간, 역사의 반전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된다.
화려한 영웅이나 귀족이 아니었다. 시골에서 올라와 그저 길을 지나가던 평범한 아저씨, 구레네 사람 시몬.
로마 군인들은 그를 아무렇게나 잡아채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다. 시몬에게는 날벼락이었다. “재수 없는 날이군.” 그는 투덜거렸을지 모른다. 피 묻은 나무 형틀의 무게는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신이 지금 짊어진 그 십자가가, 바이러스로 멈춰버린 인류의 역사를 다시 켜는 ‘부팅 디스크(Installation Media)’였다는 사실을.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흘린 피가 ‘죽음’이었다면, 십자가에서 흐른 피는 시스템을 복구하는 ‘생명’이었다.
4. 시스템 재시작: 붉은(Rufus) 생명의 증거
성경 마가복음은 굳이 이 평범한 시몬을 이렇게 소개한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시몬…” (막 15:21)
여기서 ‘루포(Rufus)’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라틴어로 ‘붉다(Red)’는 뜻이다.
소프트웨어 ‘Rufus’가 죽은 컴퓨터를 살려내듯, 시몬의 아들 ‘루포’는 십자가 사건 이후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았다.
놀라운 반전은 장소(Location)에 있다.
로마 군인들이 예수를 조롱하던 곳은 예루살렘의 변방이었다. 그들은 “너희 왕국은 끝났다”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시몬의 아들 루포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훗날, 군인들의 고향이자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Italy)’로 건너갔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라고 쓴다.
군인들은 십자가를 ‘형벌’로 주었지만, 시몬과 루포 가족은 그것을 ‘복음’이라는 새로운 OS로 바꿔 로마 한복판에 설치해 버린 것이다.
결국 로마 제국은 무너졌지만, 루포가 심어놓은 사랑과 생명의 왕국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에필로그: 소시민, 역사를 다시 켜는 사람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시드기야의 시대처럼 캄캄할 때가 있다. 사업은 실패하고, 건강은 적신호가 켜지고, 세상은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조롱하는 것만 같다. 내 인생의 화면이 ‘블루 스크린’처럼 파랗게 질려버린 순간.
그러나 기억하라. 역사의 대전환은 위대한 영웅들의 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시골 농부 시몬, 그리고 노예의 이름처럼 흔하디 흔한 이름을 가졌던 그의 아들 루포. 그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멈춰버린 역사를 다시 켰다.
당신이 오늘 억지로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있는가?
그것은 짐이 아니다.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누군가의 세상을 다시 켜기 위해 하나님이 당신 손에 들려준 ‘부팅 디스크’일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루포(Rufus)가 꺼진 컴퓨터를 살리듯,
오늘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당신의 그 ‘붉은’ 땀방울이, 셧다운 된 이 세상을 다시 힘차게 돌아가게 할 것이다.
[작가의 말]
역사의 아이러니는 언제나 평범한 곳에서 빛납니다. 당신의 오늘이 비록 ‘재수 없는 십자가’를 진 날 같을지라도, 그것은 위대한 이야기의 서막입니다. 힘내십시오. 다시 켜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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