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 증발한 시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가 묻는 것
1. 죄가 가벼워진 시대의 풍경
우리는 지금 ‘죄(Sin)’라는 단어가 실종된 시대를 살고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나 하나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짓밟는 것은 ‘능력’이라 불리고, 교묘한 거짓말은 세련된 ‘처세술’로 포장된다. 양심의 가책은 촌스러운 감정이 되었고, 도덕적 부끄러움은 생존 경쟁에서 불리한 약점이 되어버렸다.
죄를 짓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사람들. 뉴스를 채우는 끔찍한 범죄들 앞에서 우리는 혀를 차지만, 돌아서면 금세 잊는다. 우리의 영혼은, 그리고 나의 양심은 서서히 무감각해져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인(火印) 맞은 양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전,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어느 오후 3시의 기억을 소환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보여주는 전 우주적인 사건이 거기에 있다.
2. 우주가 멈춘 시간, 제9시
마가복음 15장 34절.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기 직전, 십자가 위에서 날카로운 비명 하나가 터져 나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oi, Eloi, lama sabachthani)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것은 점잖은 종교적 기도가 아니었다.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끊겨 나가는 아들의 처절한 절규였다.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의 언어, 그것도 가장 낮은 자들이 쓰던 아람어로 토해낸 이 비명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인류가 저지른, 그리고 당신과 내가 은밀하게 즐겼던 탐욕, 살인, 간음, 시기, 교만… 그 모든 더러운 ‘죄의 화신(Incarnation of Sin)’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3. 감형(減刑) 없는 심판
재판장 되신 하나님은 그 순간, 죄 덩어리가 된 아들을 철저하게 외면하셨다.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신의 자비’는 그 십자가 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죄에 대한 판결은 냉혹하고 서늘할 만큼 정확했다.
”감형? 없다.”
“집행유예? 없다.”
“정상참작?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에게조차 단 1%의 에누리도 없이 죄의 죗값을 물으셨다. 철저한 버림. 완벽한 단절. 그리고 생명을 끊어버리는 사형 집행.
그것이 바로 죄의 무게다. 우리가 “실수였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라고 가볍게 넘기는 그 죄의 진짜 가격(Cost)은, 신의 생명조차 가차 없이 집어삼킬 만큼 비싼 것이었다.
4. 당신은 그 비명을 듣고 있는가
많은 현대인이 십자가를 액세서리로 목에 걸고, 교회 지붕 위에 붉은 네온사인을 밝힌다. 하지만 정작 그 십자가에서 터져 나온 핏빛 절규에는 귀를 막고 있다.
아들도 용서받지 못한 그 냉혹한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무슨 배짱으로 “내 죄는 괜찮다”라고 말하는가? 신의 아들이 찢겨나가며 지불한 그 끔찍한 대가를 보고도 아무런 떨림도, 아무런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이미 죽어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필로그: 역설적인 희망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 절규는 본래 당신과 내가 지옥의 끝자락에서 영원히 질러야 했을 비명이었다.
하지만 그가 거기서 버림받았기에, 우리는 여기서 부름 받았다.
그가 철저히 끊어졌기에, 우리는 다시 이어질 수 있었다.
이토록 무서운 심판이 있었기에, 이토록 위대한 사랑이 성립된다.
오늘, 각자도생의 정글 속에서 무뎌진 당신의 양심을 향해 묻는다.
당신은 죄의 화신이 되어 죽어간 그분의 비명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소음에 취해 영혼의 죽음을 방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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