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의 떨림과 엔제리너스의 로고 사이에서
거리를 걷다 보면 날개 달린 아기 천사가 턱을 괴고 있는 익숙한 커피숍 간판을 마주합니다. ‘Angel-in-us (우리 안의 천사)’.
참 묘한 일입니다. 첨단 과학과 AI가 지배하는 21세기, “천사를 믿으십니까?”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판타지 소설 쓰냐”는 핀잔을 들을 텐데, 우리는 저 천사 로고가 찍힌 커피잔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손에 듭니다. 아니, 오히려 그 따뜻한 잔을 쥐었을 때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팍팍한 회색빛 도시의 삶 속에서, ‘내 안에도 어쩌면 선한 천사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희미한 믿음, 혹은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본능적인 바람을 말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2000년 전, 예루살렘의 어느 캄캄한 성소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여기, 평생을 이성과 율법, 그리고 성실함으로 살아온 노신사 사가랴가 서 있습니다.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제사장입니다. 헬라 철학이 지중해를 덮고 로마의 군화 발이 세상을 짓밟던 그 ‘이성의 시대’에, 그는 묵묵히 향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은 차가운 쌀독처럼 비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없고, 아내는 늙었고, 세상은 희망이 없어 보였으니까요. 그의 기도는 습관이었을지언정, 기대는 아니었을 겁니다.
바로 그때, 돌발변수가 등장합니다.
향 연기 자욱한 분향단 우편, 인간의 계산기에는 없던 존재, 가브리엘이 나타난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사카랴여.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사카랴는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것은 귀신을 본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내 인생의 드라마는 여기서 끝’이라고 단정 지었던 자신의 낡은 각본이, 신의 개입으로 완전히 찢겨나가는 순간에 느끼는 전율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은 사카랴에게 판타지를 선물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팩트(Fact)’를 들고 왔습니다. 멈춰버린 줄 알았던 생명의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이라는, 요한이라는 새 시대의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는 엄청난 팩트 말입니다.
다시 오늘, 커피숍 창가에 앉아 봅니다.
우리가 마시는 이 커피 한 잔의 브랜드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2000년 전 가브리엘이 사카랴에게 했던 말이, 사실은 지금 당신에게도 유효하다고 말이죠.
현대인들은 천사를 동화 속 존재로 치부하지만, 막상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캐럴을 듣고 트리를 장식하며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길 기대합니다. 그것은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여전히 ‘접속’을 기다리는 안테나가 서 있기 때문 아닐까요?
오늘 하루, 당신의 일상이 사카랴의 텅 빈 성소처럼 적막하고, 혹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은 없을 것 같은 권태로움에 빠져 있다면 이렇게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무심코 마시는 커피 향 사이로, 혹은 스쳐 지나가는 겨울바람 사이로 2000년 전의 그 가브리엘이 윙크를 보내고 있다고.
”여보게, 쫄지 말게(Fear not). 자네의 기도는 이미 접수되었다네. 자네의 인생 시나리오, 아직 엔딩 크레딧 올라가려면 멀었어.”
우리 안의 천사(Angel in us)는 어쩌면,
내 안의 가장 선한 마음이 깨어나는 바로 그 순간,
기적처럼 우리 곁에 와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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