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In the Beginning)와 광야(The Wilderness)
창세기 1장 1절은 장엄한 선포로 시작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이 짧은 한 문장이 선포되기 전, 우주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우리는 이 지점에서 우리 민족의 저항 시인 이육사의 시 <광야>를 떠올리게 됩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시인이 노래한 ‘까마득한 날’은 성경의 ‘태초’와 완벽하게 공명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전, 그 압도적인 우주적 침묵과 흑암의 상태. 시인은 그 정적을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고요’로 묘사했습니다.
우주적 침묵을 깨는 ‘소리’의 태동
구독자님의 통찰처럼, 만물의 태동은 침묵이 깨지는 순간 시작됩니다.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던 그 태초의 빈 공간에 하나님의 말씀(Logos)이 파동치며 들어왔을 때, 비로소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생명이 박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성경 속에서 ‘닭’은 하나님의 역사 무대에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중요한 ‘조연’의 배역을 맡은 것처럼 보입니다.
창조의 전령: 어둠이 가장 깊을 때, 빛이 오고 있음을 가장 먼저 알리는 존재.
영혼의 알람: 베드로의 칠흑 같은 영적 밤을 깨우고 그를 회개로 이끌었던 존재.
베드로의 닭, 그리고 우리의 새벽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던 그 참담한 밤, 정적을 가르고 울려 퍼진 닭 울음소리는 단순히 가축의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잠든 양심을 깨우는 ‘영적인 알람’이자, 실패한 인간의 삶 속에 다시금 창조의 질서를 부여하시려는 주님의 세심한 연출이었습니다.
이육사가 광야에서 갈구했던 그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기다림은, 어쩌면 창세기 1장 1절의 선포를 완성하러 오실 ‘하나님의 어린 양’에 대한 영적인 갈망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광야’에 서 있습니다.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은 막막한 삶의 순간일지라도,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의 말씀이 임하는 순간 우리의 새벽은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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