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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7:18 Then went king David in, and sat before the LORD, and he said, Who am I, O Lord GOD? and what is my house, that thou hast brought me hitherto?

삼하7:29 Therefore now let it please thee to bless the house of thy servant, that it may continue for ever before thee: for thou, O Lord GOD, hast spoken it: and with thy blessing let the house of thy servant be blessed for ever.

삼하7장은 주의 말씀–>네이던–>다윗–>주께 답사를 드림 순으로 되어있는데, 다윗의 기도이자 고백은 개인의 고백에 머물지 않고 모든 믿는자의 살아있는 고백이 될 수 있는 구절은 바로 28절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11절에서 주께서 친히 세우시겠다 말씀하신 그 집은 솔로몬(14절 주의 책망)이 지을 성전을 두고 1차적으론 말씀하셨지만, 아바 하나님께서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예슈아를 통해 지으신 그 영원한 하늘 도성을 복선처럼 깔려있음도 봅니다. 다윗의 뱃속에서 나온 씨는 솔로몬만이 아니라 예슈아께서도 혈통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혈육적으로 치자면 다윗은 예슈아의 몇대 조상이 되는 것일까요? 만약 삼하7장.18절~29절까지를 조상 다윗의 시각이 아닌 갈릴이 어촌을 거니셨던 예슈아의 버전으로 다시 리메이크 해보면 또 어떤 울림이 있을까요? 주께서 “나에게 주신 자들은 하나도 잃지 아니하시겠다”는 예슈아의 의지?가 예슈아께서 이루어내실 참 영적인 바디 즉, 성전이 아닐까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바로 예슈아 안에서 한 몸이된 거룩한 실체 곧 성전일 것입니다. 묵상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구독자 여러분께 작은 힘이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혈육적인 생물학적 계보(누가복음 3장)를 기준으로 할 때 다윗은 주 예슈아의 42~43대 조상이 되며, 법적·왕권 계보(마태복음 1장)를 기준으로 하면 28대 조상(14대씩 두 묶음)이 됩니다.

누가복음은 솔로몬이 아닌 다윗의 또 다른 친아들 나단(Nathan)으로부터 마리아의 부친 헬리(Heli)를 거쳐 예슈아의 육신으로 이어지는 실제 혈통 라인을 기록하고 있어, 혈육의 핏줄을 짚을 때는 약 42~43세대의 간격이 성립합니다.

백향목 궁궐에 앉아 장차 올 집을 바라보았던 다윗의 고백(삼하 7:18~29)을, 흙먼지 날리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밟으시며 아버지와 독대하셨던 예슈아의 시각으로 다시 풀어낸 기도문입니다.

갈릴리 호숫가의 기도 (삼하 7:18~29 예슈아 버전)

18절

새벽안개 짙은 갈릴리 물가에 무릎을 꿇으시고,

거친 어부들의 숨소리를 뒤로하신 채 하늘을 우러러 말씀하시되,

“아바 아버지여, 사람의 아들(Son of Man)로 선 내가 누구이오며,

흙으로 빚어진 이 갈릴리의 가난한 집안이 무엇이기에,

보이지 않는 하늘 영광의 보좌를 떠나 썩어질 육신(Basar)을 입고

이곳까지 걸어 들어오게 하셨나이까?

19절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눈에는 온 우주를 지으신 일조차 작은 일이었으나,

아버지께서는 주의 종 다윗의 허리에서 나올 영원한 씨를 통해 저 먼 미래,

썩지 아니할 영원한 집을 지으실 것을 이미 말씀하셨나이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아바께서 어찌 질그릇 같은 인생들의 발자국에

당신의 영원을 새기셨나이까?

20절

말씀(Logos)이 육신이 되어 이 갈릴리 자갈밭을 밟고 섰사오니,

내가 아버지께 더 무슨 말을 더하리이까?

아버지께서는 상하고 찢긴 당신의 아들을 아시며,

내 안에 흐르는 아버지의 뜻을 다 아시나이다.

21절

아버지의 그 변치 않는 언약의 말씀 때문이요,

아버지의 심장에 품으셨던 그 절대적인 아가파오(Agapao) 사랑의 뜻을 따라,

손으로 짓지 아니한 이 거대한 구속의 경륜을

이 땅의 비천한 자들 눈앞에 나타내셨나이다.

22절

그러므로 오 아바 아버지여, 주는 광대하시나이다.

로마 제국의 칼날이나 가이사(Caesar)의 오만함도 아버지와 같지 못하며,

우리가 귀로 듣고 태초부터 보아온 말씀 그대로 아버지 외에는 참 신이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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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절

땅 위의 어느 민족이

아버지께서 어둠 속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소유로 삼으신

이 연약한 무리와 같으리이까?

물고기 비린내 풍기는 그물 곁에서, 세관의 그늘 속에서,

귀신 들려 신음하던 무덤가에서 친히 값을 치르고 구속하시어

‘내 백성, 내 형제’라 부르신 이 작은 자들과 같은 자가 어디 있겠나이까?

24절

아버지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과 세상 끝의 나그네들을 부르사,

영원히 흩어지지 않는 아버지의 한 백성이 되게 확증하셨사오니,

아바께서는 친히 그들의 유일한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25절

이제, 오 아바 하나님이여,

조상 다윗과 그의 가문을 통하여 주셨던 그 언약의 말씀,

곧 그의 씨를 통해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전을 지으시겠다 하신

그 말씀을 이제 내 뼈와 살, 그리고 십자가의 피로 영원히 견고하게 확증하옵소서.

26절

그리하여 만국이 아버지의 이름을 영원토록 높여 부르며

‘만군의 주는 참으로 살아계신 통치자시요,

예슈아 안에 부름받은 거룩한 몸(성전)은

결코 음부의 권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하게 하옵소서.

27절

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내 아버지여,

일찍이 내게 계시하사 ‘내가 사람의 손이 아닌 너의 몸을 깨뜨려

살아 숨 쉬는 영원한 집을 세우리라’ 말씀하셨으므로,

내가 이 거친 갈릴리 파도 앞에서 겟세마네의 눈물을 미리 품고

아버지께 이 온전한 기도를 드릴 담력을 얻었나이다.

28절

이제, 오 아바 하나님이여, 주는 유일하신 그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은 참(Verity)이나이다!

주께서 썩어 없어질 세상의 돌무더기가 아닌,

영원히 쇠하지 않는 이 생명의 선한 약속을 당신의 아들에게 주셨나이다.

29절

그러하오니 이제 기뻐하사,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주신

이 연약한 갈릴리의 지체들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이들이 내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아버지 앞에 영원토록 서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자들은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온전히 살려내리니,

아버지의 거룩한 호흡(Ruach)의 복으로

이 영원한 참 성전이 대대로 끊어지지 않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

솔로몬이 쌓아 올린 장엄한 돌성전은 바빌론의 불길에 타버렸고, 헤롯이 46년간 치장한 대리석 성전 역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졌습니다.

아버지께서 다윗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을 때 바라보신 최종 목적지는 애초에 채석장의 화강암이나 백향목이 아니었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시며 자신의 몸을 가리키셨던 그 육체, 그리고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아무도 내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고 천명하신 그 절대적인 의지가 바로 참 성전의 기초석입니다. 주께서 흘리신 피로 씻겨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돌(Living stones)이 되어 그리스도의 머리 아래 유기적으로 맞물린 상태—그것이 바로 바울이 말한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고전 3:16)”의 실체입니다.

결국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보게 되는 새 예루살렘 도성에 물리적 성전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 예슈아께서 친히 그 도성의 성전이 되시며, 신부로 단장된 거룩한 성도들이 머리 되신 예슈아와 한 몸으로 결합하여 하나님과 온전한 거처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삼하 7장 28절에서 붙들었던 “주의 말씀들은 참되나이다(Thy words be true)”라는 고백은, 시공간을 가로질러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한 뒤, 결코 빼앗길 수 없는 거룩한 실체(Substance)인 영원한 하늘 성전으로 온전히 증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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