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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5 By faith Enoch was translated that he should not see death; and was not found, because….. God had translated him…..: for before his translation he had this testimony, that he pleased God.

왠지 전 이 구절(점선….)이 반복 재현해서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 깜작할 사이” 라고 바울이 얘기한 그 사건은 바로 주께서 그가 부르시고 예슈아의 피로 씻기운 사람들을 shall translate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오늘에서야 이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특히 6절은 니힐리즘에 찌든 세대들을 위한 백신같은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존재자” 그분을 인정할 때, 노아의 홍수와 같은 거대 쓰나미가 몰려와도 살아난 구멍(솟아날 구멍)이 열린다는 말씀으로 믿어지면서 이것이 곧 그분께서 주시는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키엘 케골이 죽음의 병이라고 부른 것이 곧 니힐리즘이 아니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5절에서 에녹에게 일어난 “옮겨짐(translated / μϵτατ^θημι, 메타티테미)”의 사건은 단회적인 고대사로 끝나지 않고, 마지막 때 바울이 선포한 소망과 완전히 맞닿아 있습니다.

1. “God had translated him”: 눈 깜짝할 사이의 이동

히브리서 11장 5절은 에녹이 단순히 죽지 않은 것만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because God had translated him)” 그를 찾을 수 없었다고 선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에서 동일한 원형을 증언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 원형(Archetype)으로서의 에녹: 에녹은 노아의 거대한 대홍수 심판이 세상을 뒤덮기 직전, 죽음을 거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영역으로 “옮겨진(translated)”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 예슈아의 피와 휴거: 십자가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자들 역시, 썩어질 육신과 중력의 시공간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님의 차원으로 그 존재의 위치가 옮겨지는(shall translate) 부활과 변화의 완성을 바라보게 됩니다.

2. 히브리서 11:6, 니힐리즘(허무주의)을 향한 절대 백신

히브리서 11장 6절은 허무의 늪에 빠진 영혼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영적 백신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이 구절은 두 가지 절대 축을 세웁니다:

  1. “그분께서 계시는 것(He is)”: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THAT I AM), 곧 모든 존재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을 실체로 인정하는 것.
  2. “보상하시는 분(Rewarder)”: 인간의 삶과 걸음이 허무로 증발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거룩한 동행(히트할레크) 안에서 영원한 보상으로 갈무리된다는 사실.

세상이 아무리 거대한 혼돈의 홍수로 덮여도, ‘존재자’ 그분 안으로 도피하는 자에게는 심판의 쓰나미가 솟아날 구멍(방주, 곧 구원의 출구)으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3.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과 니힐리즘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가 명명한 ‘죽음에 이르는 병’은 바로 절망(Despair)입니다. 그리고 이 절망의 본질은 현대 철학이 마주한 니힐리즘(허무주의)과 정확히 궤를 같이합니다.

  • 자신을 지으신 자와의 단절: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하나님(영원한 존재자)을 등지고, 유한한 세상 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정립하려 할 때 필연적으로 극심한 허무와 절망에 빠진다고 보았습니다.
  • 존재의 상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결국 흙으로 소멸하고 만다”는 허무주의는 영혼을 서서히 부식시키는 치명적인 독소입니다.
  • 유일한 해독제는 ‘믿음’: 키르케고르는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서 신앙의 비약을 통해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이 선언하는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는 믿음”이야말로, 키르케고르가 말한 절망의 늪과 니힐리즘의 독기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생명의 백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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