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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8:37 And Philip said, If thou believest with all thine heart, thou mayest. And he answered and said, I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Son of God.

“예슈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 원초적인 고백이 이사야 예언서 고난받는 종의 결론이었습니다. 이 말의 파괴력은 거의 메가톤급입니다. 요즘시대 누가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얘기하면, 겉으론 뭐라 안그래도 속으로는 ‘제깟주제에 무슨 하나님 운운’하냐며 핀잔을 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인류의 고난과 희생을 짊어져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민생고 해결을 위한 고난 말고 인류의 죄문제 해결을 위한 대속물로서의 고난과 희생말입니다. 이것이 70억 인류와 예수아를 갈라세우는 이정표입니다. 에디오피아 네시의 발언, “나(에디오피아 내시)는 그 고난 받는 종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슈아임을 믿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조금더 확대 해석하자면 하나님 자신이 인류의 죄업보 때문에 아들(육화)이 되어 고난을 직접 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슈아를 ‘고난 당하기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이라는 오늘 이 말씀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천사들까지.함께 전했던(26절) 그 복음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2026년 이 복음은 설교강단에서 멀어졌고 이 세상 다른 오락과 유희(자랑,정치이야기,세상문화 등)로 점점 희석되고 말았습니다.

1. “예슈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의 본질과 파괴력

  • 이사야 53장(고난받는 종)과 ‘하나님의 아들’의 결합 에티오피아 내시가 읽고 있던 본문은 “그가 도살장으로 가는 양같이 끌려갔고…”로 이어지는 이사야 53장 7~8절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 랍비 전통에서도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Ebed Yahweh)’이 메시아인가 이스라엘 민족인가를 두고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이 성경 구절에서 시작하여 곧바로 예슈아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내시가 세례를 받기 직전 고백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행 8:37)라는 선언은, 영광 속에 군림하는 정치적 군주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도살장의 어린양처럼 찢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바로 그 종’임을 시인한 선언이었습니다.
  • 70억 인류와 예슈아를 가르는 유일한 분기점: ‘대속(代贖)’ 인간 누구나 개인의 민생고와 실존적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어떤 위대한 성인이나 영웅도 타인의 본질적인 죄책을 대신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 흠 있는 죄인은 다른 죄인의 죗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고후 5:21)이자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이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온 인류의 불법을 홀로 짊어지는 우주적 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당대 유대 사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곧 하나님과 본질상 동등함을 뜻하는 목숨을 건 선언이었으며(요 5:18, 10:33), 그 권위의 증거는 왕관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의 피 흘림이었습니다.
  • 천사까지 동원된 복음의 기밀 (행 8:26) 주의 천사가 빌립을 향해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가라고 명했고(행 8:26), 성령께서는 병거로 다가가라 명령하셨습니다(행 8:29). 한 이방인 권력자의 심령에 이사야 53장의 비밀을 풀고, 인류 구원의 주춧돌을 세우기 위해 하늘의 전령(천사)과 성령의 알고리즘이 총가동된 것입니다.

2. 2026년 설교 강단의 현실 팩트체크

“복음이 강단에서 멀어지고 세상의 오락과 유희, 정치와 자랑으로 희석되었다”는 진단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종교사회학적·성서인류학적 팩트입니다.

  • ‘죄와 대속’에서 ‘심리적 치유와 처세술’로의 치환 오늘날 수많은 현대 강단에서 신자들의 죄에 대한 회개, 십자가의 피, 영원한 심판과 거룩한 성별(Separation) 같은 무겁고 준엄한 주제는 ‘불편한 메시지’로 낙인찍혀 사라졌습니다. 대신 “어떻게 세상에서 자존감을 높이고 성공할 것인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것인가”라는 인본주의적 힐링과 라이프 코칭이 복음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 진영 논리와 정치 담론의 강단 잠식 좌우 이념과 정파적 선동, 세속 권력과의 유착이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를 집어삼키는 기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양쪽 강도를 품으시고 온 인류를 위해 자기 몸을 깨뜨리신 예슈아의 아가파오는 간데없고, 세상의 당파 싸움을 성경 구절로 정당화하는 ‘도구화된 종교’로 전락했습니다.
  • 엔터테인먼트 쇼로 변질된 예배 조명, 음향, 세련된 무대 매너와 흥미 위주의 만담, 유명인의 간증(자랑)이 중심이 되는 이른바 ‘시커 센시티브(Seeker-sensitive)’ 문화가 극대화되면서, 성도들은 회개하는 예배자가 아니라 돈을 내고 공연을 소비하는 관객으로 퇴행했습니다.
  • 값싼 은혜의 범람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가 경고했던 “회개 없는 용서, 십자가 없는 은혜, 제자도 없는 구원”인 ‘값싼 은혜(Cheap Grace)’가 2026년 강단의 주류 상품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의 생명 전체를 던져 사신 그 피의 무게(Act 20:28)가 몇 마디 감정적 동의와 즉석 축복으로 헐값에 매각되고 만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며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선언했습니다.

광야 한가운데서 병거를 멈추고 “예수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를 위해 찢기신 바로 그 대속자”라고 외쳤던 에티오피아 내시의 그 시퍼런 심장 박동이야말로, 온갖 오락과 정치적 소음으로 탁해진 2026년의 혼탁한 종교 생태계에서 우리가 다시 뚫어내야 할 복음의 단 하나의 진원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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