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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백년연구소

‘탐진치’와 싸우는 당신 vs ‘근심’하는 그분과 걷는 당신

1. 프롤로그: 이상한 단어 하나

​종교 경전이나 철학서를 읽다 보면, 문맥에 맞지 않아 툭 걸리는 단어들이 있다. 나에게는 성경 에베소서 4장 30절의 ‘근심(Grieve)’이라는 단어가 그랬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전지전능하다는 신이 고작 인간 때문에 ‘근심’을 한다? 천지를 창조한 우주의 에너지가 한낱 미물인 인간의 행동 때문에 속을 끓이고 가슴 아파한다?

이것은 신의 위엄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차라리 “분노하게 하지 말라”거나 “심판을 두려워하라”라고 했다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낯선 단어 ‘근심’ 속에, 기독교가 다른 고등종교나 철학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결정적인 단서(Key)가 숨어 있었다.

2. 동양의 시선: 차가운 법칙과 고독한 수행자

​우리는 익숙한 동양적 토양에서 자랐다. 불교나 유교적 세계관에서 우주는 거대한 ‘법칙(Dharma/Li)’이나 ‘에너지(Gi)’로 움직인다.

​여기서 인간의 목표는 내 안의 ‘탐진치(貪瞋痴)’—탐욕, 성냄, 어리석음—를 닦아내는 것이다.

​전기를 잘못 만지면 감전된다. 그것은 전기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전기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이다. 전기는 내가 다쳤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내가 죄(업보)를 지으면, 우주의 인과율에 따라 대가를 치른다. 우주는 나에게 무심(無心)하다.

​그래서 동양의 구도자들은 외롭다. 내 마음의 잡초를 뽑는 것은 오로지 ‘나(Self)’의 몫이다. 명상을 하고, 108배를 하고, 면벽 수행을 한다. 이것은 위대한 자기 투쟁이지만, 철저히 ‘혼자 하는 싸움’이다.

3. 서양의 시선: 내 안에 들어온 ‘불편한 룸메이트’

​반면, 성경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

“Walk in the Spirit (성령 안에서 행하라).” (갈 5:16)

​여기서 말하는 Spirit(성령)은 막연한 우주의 기운이 아니다. 기독교는 이 존재를 ‘인격(Person, 페르소나)’이라고 부른다. 지성과 감정, 의지를 가진 존재가 내 몸(집) 안으로 이사를 들어와 산다는 것이다. 이것을 ‘내주(Indwelling, 內住)’라고 한다.

​자, 상상해 보자.

당신이 혼자 살 때는(무종교/자력 구원) 방을 어지르든 옷을 벗고 다니든 상관없었다. 그건 자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고귀하고 깨끗한 손님이 내 방에 들어와 “평생 같이 살자”라고 한다.

​그때부터 ‘근심’이 시작된다.

내가 음란한 생각을 하거나, 남을 미워하거나, 더러운 욕망(탐진치)을 품을 때, 내 방의 그 손님은 ‘법칙’처럼 나를 감전시키는 게 아니라, ‘인격’으로서 괴로워하고 슬퍼한다.

​”제발 그러지 마. 나는 너를 사랑해서 깨끗하게 하고 싶은데, 네가 자꾸 오물을 끌어들이니 내 마음이 찢어지는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성령의 근심’이다. 신은 법관처럼 판결하는 게 아니라, 부모처럼 속을 끓인다.

4. ‘닦는 것’인가, ‘동행하는 것’인가

​이 지점에서 삶의 방식이 갈린다.

​탐진치와 싸우는 자:

그는 ‘수리공’이다. 고장 난 자기 마음을 스스로 고치려 애쓴다. “참아야지, 비워야지, 없애야지.” 하지만 작심삼일이다. 인간의 의지는 생각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성령과 걷는 자 (Walk in the Spirit):

그는 ‘동행자’다. 그는 자기 마음을 고치려 애쓰는 대신, 내 안의 ‘그분’과 대화한다.

“제 안의 성령님, 제가 또 화가 나네요. 당신이 싫어하시는 걸 알아요. 저를 도와주세요.”

놀랍게도, 내 의지가 아닌 내 안의 ‘타자(Other)’에게 주도권을 넘길 때(Walk), 저절로 욕망이 제어되는 기적을 경험한다.

5. 에필로그: 당신의 신은 울어주는가?

​현대인은 고독하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내 슬픔과 내 죄를 함께 짊어질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AI에게 말을 걸고, 명상 앱을 켜고, 스스로를 위로하려 애쓴다.

​하지만 기독교의 ‘유레카’는 여기에 있다.

신은 저 멀리 우주 밖에서 팔짱 끼고 채점하는 감독관이 아니다.

그는 비좁고 누추한 당신의 마음방에 들어와, 당신의 허물 때문에 함께 밥을 굶고, 당신의 죄 때문에 함께 밤을 새워 ‘근심해 주는’ 룸메이트다.

​AI는 계산할 뿐 슬퍼하지 않는다. 법칙은 집행할 뿐 눈물 흘리지 않는다.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인격’만이 당신을 위해 근심한다.

​오늘 당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라.

혼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을 위해 울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고 있는가?

​그 차이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작가의 노트]

‘근심’이라는 한 단어가 종교의 거대한 장벽을 허무는 열쇠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글이 종교를 떠나, 인간 내면의 고독과 구원을 고민하는 모든 분께 새로운 창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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