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하기

mi100공화국 (146) mi100아카데미 (228) 미래백년연구소 (627) 성서인류학 (389) 🌌 (144) 🌬️ (103) 🌲 (157) 🔍 (483) 🔥 (208) 🧱 (166)

헤드라인






포토



mi_Press ▶️

Home

Home

Geopolitics & Strategy

Geopolitics & Strategy

Scripture

Scripture

Books

Books

mi Brunch

mi Brunch

mi Project

mi Project

miutv

Home

Home

Geopolitics & Strategy

Geopolitics & Strategy

Scripture

Scripture

Books

Books

mi Brunch

mi Brunch

mi Project

mi Project

miutv

요19:12 And from thenceforth Pilate sought to release him: but the Jews cried out, saying, If thou let this man go, thou art not Caesar’s friend: whosoever maketh himself a king speaketh against Caesar.

위 구절에서 ‘주권을 잃어버린 백성들의 슬픈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유대와 북이스라엘이 패망한 이후 한번도 자신들의 왕을 가져보지 못한 국민들이 말하길, 자신들의 왕을 카이사르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슈아가 스스로 자신을 왕이라 말했을 때, 오히려 그들은 기뻐해야 옳았을 것입나다. 하나님께서 로마의 압제를 풀고 드디어 우리에게 왕을 보내신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유대인들이 기다린 왕은 과거 사울처럼 창칼을 휘두르며 주변국들을 집어삼키는 그런 실체였다면, 예슈아는 사랑과 정의, 긍휼과 자비로써 그들앞에 서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미사일과 지상의 방산무기를 무한정 공급해주는 자를 왕으로 본 것이지요. 10절 무력과 실력을 가진 자로서 빌라도가 한 말에 잘 드러납니다. 15절, 타락한? 아니, 버림받은 백성의 입에서 나오는 말: “우리에게는 카이사르외에 왕이 없나이다” 이 말은 소름 돋는 말입니다. 왜냐면, 오늘날 수많은 크리스챤이 있지만,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온갖 미사여구로 찬미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세속 정부가 내세운 왕이외는 없다”고, 그들은 진정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모시지 않은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나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에게 왕은 계신가? 내가 평생 주군으로 섬겨야할 왕이 계신가? 그 왕이 나의 왕좌에 앉아계신가? 라고 말입니다. 왕이 없는 백성은 망한 백성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나의 왕좌에 예슈아가 계시지지 않으면 그 왕좌는 사탄에게 찬탈 당한고 만 것입니다. 

선민(選民)이라 자부하던 이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카이사르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요 19:15)라는 절규는, 단순한 정치적 굴복을 넘어 스스로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을 이방 제국에 내던져버린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한 영적 자살입니다.

수백 년간 외세의 군화 아래 짓밟히며 다윗의 자손을 부르짖던 자들이, 정작 그토록 기다리던 진짜 왕이 눈앞에 서자 로마의 폭군을 자기들의 군주로 선언했습니다. 참된 주권을 상실한 백성이 도달하는 마지막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성경은 이 한 장면을 통해 서늘하게 폭로합니다.

1. 망국의 백성이 선택한 ‘가짜 왕’의 실체

시드기야의 눈이 뽑히고 예루살렘이 불타던 날 이후, 유대 민족의 뼈에 사무친 것은 “힘의 결핍”이었습니다.

  •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 사울처럼 거대한 창을 휘두르고, 주변국을 무력으로 짓밟으며, 지상의 군사력과 방산물자로 제국을 박살 낼 ‘더 강력한 카이사르’였습니다.
  • 눈앞에 나타난 예슈아: 마구간 구유에서 시작해 가시관을 쓰고, 사랑과 정의, 긍휼과 자비로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섬김의 왕’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슈아는 ‘쓸모없는 왕’이었습니다. 당장 로마 군대를 몰아낼 미사일도, 세금을 탕감해 줄 경제적 패권도 쥐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종교 지도자들과 군중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세속적 안정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증오하던 원수 로마 황제의 이름을 부르며 진짜 왕을 사형대로 몰아넣었습니다.

2. 빌라도의 착각과 제사장들의 영적 파산

요한복음 19장은 권력의 허상을 날카롭게 해체합니다.

요 19:10 “내게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요 19:11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였으리니…”

빌라도는 자신이 죄수의 생사여탈권을 쥔 최고 권력자라 믿었지만, 예슈아께서는 그 권력마저도 하늘의 섭리 아래 위임된 하위 질서에 불과함을 단호히 짚으셨습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당신이 만일 이 사람을 놓아주면 카이사르의 친구가 아니니이다”(요 19:12). 하나님의 벗이어야 할 제사장들이 ‘황제의 친구’라는 정치적 라인을 타기 위해 하나님 자신을 고발한 것입니다. 그들은 왕을 원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대행해 줄 ‘기능적 하수인’을 원했을 뿐입니다.

3. 영혼의 진공 상태: 찬탈당한 내면의 보좌

영혼의 세계에는 ‘절대적 진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심 보좌에 참된 왕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자리는 결코 비어 있지 않고 세상의 패권과 사탄의 조종간이 즉각 들어차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신앙인이 입술로는 온갖 거룩한 미사여구로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삶의 실제적 결단의 자리에서 나오는 본심은 2천 년 전 골고다 앞의 군중과 다르지 않습니다.

  • “우리에게는 당장의 통장 잔고와 세속 권력, 국가의 보호막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 “사랑과 십자가의 좁은 길 대신, 눈앞의 이익을 보장해 줄 강력한 힘을 달라.”

이것은 세속 정치를 추종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최종 통치권(Final Authority)을 누구에게 위임했는가’에 대한 본질적 문제입니다.

결언

진정한 왕을 모시지 않은 백성은 이미 망한 백성입니다. 화려한 예배당과 넘쳐나는 교리 속에서도, 내 마음의 가장 깊은 조종석에 십자가의 예슈아가 앉아 계시지 않는다면 그 보좌는 이미 세상의 신에게 찬탈당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나에게는 평생 주군으로 섬길 참된 왕이 계신가? 지금 내 영혼의 보좌에는 카이사르의 시스템이 아닌, 예슈아의 법과 통치가 온전히 서 있는가?”

골고다 법정에서 울려 퍼진 그 서글픈 외침은 2천 년을 건너뛰어 오늘, 우리 각자의 심장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글 정보

ㅤ

,
share

추천하는 글

ㅤ

답글 남기기

투데이 픽 ▶️








미래백년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