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Credit)과 믿음(Faith), 그 잔인한 평행이론
[기(起)] 지갑 속의 신학, ‘Credit’의 비밀
당신이 오늘 점심값으로 내민 플라스틱 카드 한 장. 우리는 그것을 ‘신용(Credit) 카드’라고 부릅니다.
현대인들은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진짜 엔진은 돈이 아니라 ‘신용’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경제 용어인 Credit의 어원은 라틴어 ‘Credo’입니다.
이 단어는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 “나는 믿습니다(I believe)”라고 고백하는 바로 그 종교적 단어입니다.
즉, 우리가 매일 긁는 카드는 “내가 갚을 것을 믿어달라”는 신앙고백서이며, 자본주의는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이는 단 1초도 작동할 수 없는 거대한 ‘신뢰의 종교’인 셈입니다. 밥을 주는 식당 주인도,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도, 결국 ‘믿음’이 깨지면 휴지 조각이 됩니다.
[승(承)] 현대판 계급장, 신용등급이라는 ‘칭의(Justification)’
성경 갈라디아서 3장 11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2천 년 전의 선언은 놀랍게도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름 돋는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주체가 하나님에서 ‘금융 시스템’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당신이 ‘의로운 사람(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인정받는 기준은 도덕성이 아닙니다. 바로 ‘신용점수(Credit Score)’입니다.
신용이 높은 자는 ‘의인’ 대접을 받으며 낮은 이자로 돈을 빌리고 VIP 혜택을 누립니다(천국).
반면 신용을 잃은 자는 ‘죄인’ 취급을 받으며 금융권에서 추방당하고 가혹한 이자를 감당해야 합니다(지옥).
세속의 율법(금융 시스템)은 냉혹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자격 없는 자를 믿음 하나로 의롭다 칭해 주시지만(Justification by Faith), 자본주의 신(God)은 철저히 ‘능력과 담보’가 있는 자에게만 신용(믿음)을 허락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잔인한 율법입니다.
[전(轉)] 불신 비용의 시대, 법(Law)의 한계
문제는 이 차가운 ‘조건부 믿음’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세 사기, 보이스 피싱, 묻지 마 범죄…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Distrust)의 비용’을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자꾸만 강력한 ‘법(Law)’을 찾습니다. 계약서를 더 꼼꼼히 쓰고, 처벌을 강화하고, CCTV를 늘립니다. 성경 식으로 말하면 ‘율법의 시대’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입니다.
하지만 갈라디아서는 명쾌하게 지적합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아무리 촘촘한 법을 만들어도 인간의 탐욕과 사기를 막을 수 없습니다. 법은 사후에 처벌할 뿐, 사람의 마음속에 ‘신뢰’를 심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하자고 외치는 사회는, 역설적으로 가장 살기 팍팍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지옥 같은 사회입니다.
[결(結)] 다시, 믿음으로의 회귀
결국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차가운 자본주의의 신용(Credit) 시스템도, 엄격한 국가의 법(Law) 시스템도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안전을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통장 잔고의 신용이 아니라, 내면의 ‘Faith(믿음)’입니다.
상대를 잠재적 사기꾼이 아니라 이웃으로 바라보는 믿음.
법의 감시가 없어도 스스로 양심을 지키는 자발적 신뢰.
그리고 이 모든 도덕성의 근거가 되는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 말은 단순히 종교적인 구호가 아닙니다.
서로를 믿지 못해 막대한 감시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성경이 제시하는 가장 경제적이고도 유일한 사회 생존 해법일지도 모릅니다.
법(Law) 보다 강한 것은 신용(Credit)이고, 신용보다 위대한 것은 결국 믿음(Faith)입니다.
당신의 사회는 지금 무엇으로 굴러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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