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검색하기

고린도전서13장 (18) 미래백년연구소 (170) 성서인류학 (135) 성서인문학 (42) 신화랑정신교범 (15) 에세이 (29) 이슈 (20) 제레미 (21) 헤드라인 (28) 히브리서11장 (21)

헤드라인






포토



미래백년연구소 ▶️

뉴스|공지

뉴스|공지

전략

전략

안보

안보

성서

성서

도서

도서

mi브런치

mi브런치

칼럼

칼럼

영화강철비3

영화강철비3

miTV

뉴스|공지

뉴스|공지

전략

전략

안보

안보

성서

성서

도서

도서

mi브런치

mi브런치

칼럼

칼럼

영화강철비3

영화강철비3

miTV

미래백년연구소

‘영생을 맛보며’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찬송가 436장. 모태신앙이든 아니든, 교회 문턱을 좀 드나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국민 찬송이다. 나 역시 지난 60 평생, 수백 번도 더 이 찬송을 불렀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후렴구에 나오는 한 구절에서 늘 멈칫하곤 했다. 입으로는 부르지만, 머리와 가슴으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후렴)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영생(Eternal Life)을 맛본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게 영생인데,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사는 이 전쟁터 같은 지상에서 그걸 어떻게 맛본단 말인가?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설교했다. “마음의 평안(Peace of Mind)을 누리는 것이 곧 천국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기분 좋고 평안한 날은 “아, 이게 천국 맛이구나” 했고, 근심 걱정이 몰려오거나 화가 치미는 날엔 “천국은 무슨, 지옥이 따로 없네” 하며 살았다. 영생을 맛본다는 건 고작해야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감정 상태’에 달린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그 해답을 찾았다.
내 감정이 아니라, 성경의 ‘건축학적 진실’ 속에서 말이다.


내 마음은 ‘호텔’인가, ‘집’인가?
​에베소서 2장 22절을 묵상하다가 ‘거처(Habitation)’라는 단어에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In whom ye also are builded together for an habitation of God through the Spirit.” (엡 2:22, KJV)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Habitation)’라고 부른다.
여기서 ‘Habitation’은 하나님이 잠시 들러 쉬다 가시는 ‘호텔(Hotel)’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아니다. 그분이 짐을 풀고, 가구를 들이고, 영원히 눌러 사시는 ‘본가(Home)’를 뜻한다.
​우리가 착각했던 ‘마음의 평안’식 천국은 하나님을 ‘손님(Guest)’ 취급하는 것이었다. 손님이 오시면 반갑고 좋지만, 손님이 떠나면 집은 다시 공허해진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늘 롤러코스터를 탄다.
​하지만 ‘Habitation’의 개념은 다르다.
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내가 건강하든 아프든, 내 인생에 태풍이 불든 상관없다. 집주인이신 하나님은 이사를 가지 않으신다. 그분은 내 안에 ‘거주(Inhabit)’하신다.


​’동거(Cohabitation)’가 곧 영생이다
​이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찬송가 436장을 펴보았다. 60년 동안 의문투성이었던 그 가사가, 갑자기 살아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여기서 ‘맛본다’는 건 식당에서 음식 간을 보는 ‘시식(Tasting)’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한집에서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상을 공유하는 ‘동거(Living Together)’의 맛이었다.
​후렴구의 마지막 가사가 그 증거다.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그렇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이 영구히 머무시는 ‘거처(Habitation)’가 되는 순간, 나는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세상 한복판에 있어도, 내 안에 주인이 계시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는 성전이다. 이것이 ‘영생의 맛’이다.
​이제 나는 미소를 띠며 노래한다
​오늘 나는 내 마음의 문패를 바꿔 달았다.
‘제레마야의 마음 (손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처 (거주자: 제레마야)’로.
​이제 나는 찬송가 436장을 부를 때 더 이상 멈칫거리지 않는다. 대신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계신 그 든든한 ‘집주인’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도 천국을 죽음 뒤의 일로만 미뤄두고, 오늘도 팍팍한 삶을 견디고만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지금, 우주의 주인이 거하시는 위대한 ‘집’이다.
​”할렐루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글: 제레마야 / 정리: 제레미)

글 정보

,

커피응원

share

추천하는 글







답글 남기기

투데이 픽 ▶️








미래백년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