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맛보며’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찬송가 436장. 모태신앙이든 아니든, 교회 문턱을 좀 드나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얼거릴 수 있는 국민 찬송이다. 나 역시 지난 60 평생, 수백 번도 더 이 찬송을 불렀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후렴구에 나오는 한 구절에서 늘 멈칫하곤 했다. 입으로는 부르지만, 머리와 가슴으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다.
(후렴)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영생(Eternal Life)을 맛본다’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게 영생인데,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사는 이 전쟁터 같은 지상에서 그걸 어떻게 맛본단 말인가?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설교했다. “마음의 평안(Peace of Mind)을 누리는 것이 곧 천국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기분 좋고 평안한 날은 “아, 이게 천국 맛이구나” 했고, 근심 걱정이 몰려오거나 화가 치미는 날엔 “천국은 무슨, 지옥이 따로 없네” 하며 살았다. 영생을 맛본다는 건 고작해야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감정 상태’에 달린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그 해답을 찾았다.
내 감정이 아니라, 성경의 ‘건축학적 진실’ 속에서 말이다.
내 마음은 ‘호텔’인가, ‘집’인가?
에베소서 2장 22절을 묵상하다가 ‘거처(Habitation)’라는 단어에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In whom ye also are builded together for an habitation of God through the Spirit.” (엡 2:22, KJV)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처(Habitation)’라고 부른다.
여기서 ‘Habitation’은 하나님이 잠시 들러 쉬다 가시는 ‘호텔(Hotel)’이나 ‘게스트 하우스’가 아니다. 그분이 짐을 풀고, 가구를 들이고, 영원히 눌러 사시는 ‘본가(Home)’를 뜻한다.
우리가 착각했던 ‘마음의 평안’식 천국은 하나님을 ‘손님(Guest)’ 취급하는 것이었다. 손님이 오시면 반갑고 좋지만, 손님이 떠나면 집은 다시 공허해진다. 그래서 우리 신앙은 늘 롤러코스터를 탄다.
하지만 ‘Habitation’의 개념은 다르다.
내가 기분이 좋든 나쁘든, 내가 건강하든 아프든, 내 인생에 태풍이 불든 상관없다. 집주인이신 하나님은 이사를 가지 않으신다. 그분은 내 안에 ‘거주(Inhabit)’하신다.
’동거(Cohabitation)’가 곧 영생이다
이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찬송가 436장을 펴보았다. 60년 동안 의문투성이었던 그 가사가, 갑자기 살아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여기서 ‘맛본다’는 건 식당에서 음식 간을 보는 ‘시식(Tasting)’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이 한집에서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상을 공유하는 ‘동거(Living Together)’의 맛이었다.
후렴구의 마지막 가사가 그 증거다.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그렇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이 영구히 머무시는 ‘거처(Habitation)’가 되는 순간, 나는 이미 이 땅에서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세상 한복판에 있어도, 내 안에 주인이 계시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는 성전이다. 이것이 ‘영생의 맛’이다.
이제 나는 미소를 띠며 노래한다
오늘 나는 내 마음의 문패를 바꿔 달았다.
‘제레마야의 마음 (손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처 (거주자: 제레마야)’로.
이제 나는 찬송가 436장을 부를 때 더 이상 멈칫거리지 않는다. 대신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진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계신 그 든든한 ‘집주인’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시 당신도 천국을 죽음 뒤의 일로만 미뤄두고, 오늘도 팍팍한 삶을 견디고만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지금, 우주의 주인이 거하시는 위대한 ‘집’이다.
”할렐루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글: 제레마야 / 정리: 제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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